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토쿠 덴노 (문단 편집) === 마지막 희망, 그리고 몰락 === 1155년, 마침내 병약하던 [[코노에 덴노]]가 병사하자 후사를 논의하는 회의가 열렸다. 코노에 덴노에겐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황족 중에서 후사를 세워야 했다. 스토쿠 상황의 친아들이자 [[후지와라노 도쿠시]]의 양자인 시게히토 친왕이 원칙상 황위 계승권 제1순위였다. 만약 시게히토 친왕이 천황이 된다면 스토쿠 상황에게도 빛이 보일 절호의 기회였다. 스토쿠로선 마지막 희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스토쿠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스토쿠 상황이 인세이를 할 경우 입지가 줄어들까 우려하여, [[후지와라노 도쿠시]]는 스토쿠 상황의 중궁인 성자의 아버지 후지와라노 타다미치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도바 상황의 4남이었던 마사히토 친왕의 유부(乳父) '''신제이'''가 가세해서 스토쿠 상황의 아들 시게히토 친왕 대신 모리히토 친왕[* 도바 상황의 손자이자 마사히토 친왕의 아들. 이후의 [[니죠 덴노]]]를 후사로 밀려고 했다. 스토쿠 상황은 [[장인어른|장인]]인 후지와라노 타다미치에게, 시게히토 친왕은 양모인 후지와라노 도쿠시에게 배신을 당한 셈이었다. 거기에 스토쿠 상황을 지원해주어야 할 '''후지와라노 요리나가'''가 아버지와 갈등을 빚게되면서 힘을 보태지 못한 것도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도쿠시와 타다미치 등은 코노에 덴노가 죽은 이유를 스토쿠 상황이 저주의 주술을 건 탓이라고 음해하는 소문을 퍼트렸다. 황위 계승에 결정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었던 도바 상황은 이 소문을 듣고 격노했다. 코노에 덴노는 도바 상황이 가장 아끼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도바 상황이 개입해 모리히토 친왕을 후사로 결정했지만, 그가 너무 어려서 황위에 오를 만한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도바 상황은 모리히토가 성장할 때까지의 징검다리 차원에서 모리히토의 친아버지이자 도바 상황 자신의 친아들이었던 마사히토 친왕을 '''덜컥 황위에 앉혀버렸다.''' 그가 바로 풍운의 삶을 살게 될 '''[[고시라카와 덴노]]'''였다. 이는 대단히 파행적인 조치였다. 마사히토 친왕은 '''황태자 책봉도 받은 바 없는''' 말 그대로 황족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을 덴노에 덜컥 앉혔으니 스토쿠 상황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만, 달리 해볼 도리도 없었다. 게다가 마사히토 친왕(4남)은 동생이었지만, 형식상으로는 스토쿠 상황(장남)을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하는 해괴한 상황에 처했다. 당연히 마사히토 친왕 또한 형인 스토쿠 상황을 고깝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토쿠 상황의 마지막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마사히토 친왕의 생모는 스토쿠 상황의 어머니였던 '성자'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다르다고 해도 스토쿠와는 이부 형제였다.] 이듬해 1156년, 도바 상황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스토쿠 상황은 죽기 전에 도바 상황을 만나려 했으나 도바 상황은 '''저놈에게 내 시체도 보이지 마라'''면서 만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스토쿠 상황이 도바 상황을 만나려 한 이유는 도바 상황의 유언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목적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고시라카와 천황도 아버지 도바 상황의 임종을 지키지는 못했다.] [[후지와라노 도쿠시]]와 후지와라노 타다미치 등은 눈에 거슬리던 스토쿠 상황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